최고관리자 | January 20, 2015 | view 1,619
2014 | 장지아, 상징질서를 뒤흔드는 ‘애브젝트’ 아트와 욕망의 미시정치학 
사이방가르드 (2014.8.)
 
장지아, 상징질서를 뒤흔드는 애브젝트아트와 욕망의 미시정치학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디지털문화정책전공 교수)
 
 
가만히 있으라.” 세월호 참사를 낳은 상징계의 대표적 규율이었다. 이것이 대한민국이란 폭력적 상징질서 속에서 힘없는 이들이 삶을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늘 모나지 않게 사는 것이 지혜라 배웠다. 체념과 순응이 세월을 닮았다 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상징계에서도 예외없이 이들 요상한 법칙이 아이들의 머리에 빠르게 이식됐다. 아이들은 삶에 대한 긍정과 순응을 이 세계에서 아름답고 건전한 삶을 유지하는 법으로 교육받아왔다. 결국 재난과 파국의 상황에서 그 상징질서에 억지로 따랐던 대부분의 아이들은 비극적 참사를 맞았다.
아이들의 사회적 타살과 죽임이 까발려지면서 상징질서의 허망한 주술의 약발은 이제 풀려버렸다. 비상식의 참사 상황은 굳건한 듯 쌓아올린 권력의 상징 질서를 철저히 아래로부터 무너뜨렸다. 권력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모두가 다 헛것이었음이 하나하나 입증되고 있다.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들, 선박회사, 해양경찰, 언론사, 검찰과 경찰, 국정원, 국회의원들, 대통령과 청와대 모두 자신들이 지닌 상징 질서내 권력을 허세와 블랙코미디로 만들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이제 사회적 질서에서 배제되고 상처 입은 주체들이 저항의 규율을 상징계를 향한 적대적 가치로 역전하려 하고 있다. 4·16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는 가부장적 상징계의 언어 주술과 규범적 질서가 이제 적어도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먹히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역사적이다.
 
애브젝트 아트의 탄생
 
이제까지 가만히 있으라는 상징계의 요구에 따르면, 한 사회는 건전한 것과 불순한 것, 착한 것과 나쁜 것, 올바른 것과 올바르지 않는 것, 깨끗한 것과 불결한 것, 질서잡힌 것과 무질서한 것,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 등으로 그 가치와 윤리적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해왔다. 사회적 금기와 통념으로 안과 밖을 철저히 분리시켰다. 이런 통념적 상징질서에 따르지 않는 주체는 추방되어 내쳐지거나 무관심과 혐오 혹은 공포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작가 장지아는 여성--예술이라는 미시정치의 대항 장치를 가지고 이같은 상징질서와 줄 쳐진 경계에 오랫동안 부단히 저항해왔다. 물론 그는 거대담론과의 씨름 보다는 개인적이고 미묘한 감각들을 통해서 오히려 크고 견고한 시스템을 드러내는작업에 충실했다. 그 스스로 가만히 있지 않기위한 방법으로 그는 상징질서로부터 추방된 애브젝트’(abject)를 불러와 지배 질서를 교란하고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그만의 독특한 애브젝트 아트의 질감은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정신분석학적 개념과 통찰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장지아는 크리스테바를 통해 다음과 같이 애브젝트를 읽고 해석한다. “신체와 외계가 통하는 구멍들(항문, 성기, 구강)에서 쏟아져 나오는 애브젝트란 사회적으로 고정된 정체성을 위협하는 경계에 있는 요소들로, 사회구조가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감추고 배제하는 것들이다. 장지아는 상징계로부터 배제된, “정체성, 체계, 질서를 어지럽히고 경계, 위치, 규칙을 무시하는애브젝트의 저항적 속성을 동원해 사회구조의 단일성을 뒤흔든다.
이제껏 성()과 속()을 경계짓고 구별짓기를 해오던 상징질서의 뻔뻔함에 그녀는 여성--예술이라는 장치로 주조된 애브젝트를 힘껏 뱉어냈다. 그녀만의 저항장치 속 애브젝트의 원료들은 피고름, , 구토, , 배설물, 오줌, 생리혈, 동물의 선지 등이다. 이들 애브젝트는 줄곧 건전한 사회를 위해 배제되고 추방된 것들이자 혐오스러운 것들이다. 애브젝트는 건전한 상징계를 유지하기 위해 밖으로 내쳐진 대상이지만 그러한 상태에서도 상징질서를 위협하고 그 경계를 뒤흔든다. 단일화된 규율과 통제의 질서에서 보면 애브젝트는 이에 어깃장 놓으며 몸의 감각을 가로지르며 상징계를 위협하는 부산물이 되는 것이다.
애브젝트가 더럽고 역겨운 대상물이라면 애브젝션’(abjection)은 이들에 대한 주체의 정서적 혹은 육체적 반응을 일컫는다. 장지아는 바로 이 애브젝트와 애브젝션을 통해 상징계의 확고부동함을 뒤흔들고 애매모호하게 만들면서 안과 밖 구별을 어렵게 만드는 위협의 전술을 펼친다. 그는 상징계가 우리에게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단일성과 유사성의 암묵적 질서를 거부하고 이를 교란시키기 위해, 눈물과 침 (예를 들면, <Princess said>(2004)<Mouth to Mouth>(2011)), 생리혈 (<꽃도장-핏방울>(2003)), 오줌 (‘오메르타, 침묵의 계율’(2007)의 사진과 설치 작업들), 소피(<도축된 소 한마리의 피로 만든 벽돌>(2012)) 등을 애브젝트로 활용하고 이를 통해 관객들의 고정관념을 들쑤시고 불편하게 만든다.
이제까지 상징질서가 완전하게 주체 외적인 것으로 금기시되고 배제했던 불결한 대상들은 그녀의 저항장치들로 생명을 얻으면서 외려 상징계에 내부 균열을 야기하고 관객 주체들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든다. 예컨대, 생리혈(꽃도장)은 상징계에서 심리적 공포와 혐오감을 지닌 애브젝트로 통념화됐지만, 그의 <꽃도장-핏방울> 싱글채널 비디오 작업에서 남녀는 생리혈이 묻은 속옷을 서로 바꿔 입으면서 그들에게 부과된 사회적 규율로부터 상호 배려하고 이해하는 모습으로 이를 승화한다. 관객들은 애브젝션의 과정 속에서 불결과 배설된 오물로 간주된 생리혈이 줄 그어진 경계를 가로지르면서 온전하게 사랑과 교감의 상징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관찰한다.
욕망의 미시정치학
장지아를 그저 페미니즘 계열의 애브젝트 아티스트로만 쉽게 이름붙일 수 없는 것은, 그녀가 보여주는 상징질서가 구축하는 헤게모니 전략에 대한 도전이 다층적이고 폭넓다는 점에 있다. 우리에게 이미 그가 확실히 보여줬던 애브젝트와 애브젝션의 효과는 오메르타, 침묵의 계율전시에서 극대화했다. 서서 오줌 누는 여자들의 아름다운 누드 사진 여섯 점으로 구성된 <Standing Up Peeing>(2006), 철 구조물에 오줌을 담은 유리볼과 이를 고무호스로 연결해 나무구조 아래 방향으로 오줌을 정화해 아래에 위치한 씨앗에 수분을 공급하고 싹을 틔우는 생명의 오줌나무’ <P-Tree>(2007), 오줌과 소금결정이 달라붙어 오묘한 형상을 보여주는 오브제들을 촬영후 인화한 <Fixed Object‘고정된 오브제’>와 이의 유리상자 속 설치 작업 <Fixation Box> (2007) 등에서 우리는 불결한 것으로 배척된 배설물을 통해 반대로 건강성, 아름다움, 일탈과 생명력 등과의 연결을 확인할 수 있다.
장지아가 행하는 금기와 경계의 위반은 오메르타에서 보여줬던 애브젝트의 성정치학을 넘어선다. 오히려 가만 있으라는 상징질서의 내밀한 폭력에 대한 위반과 욕망의 정치적 아나키즘에 가깝다. 그의 작업들에선 고문과 사랑, 고통과 쾌락, 가학과 욕망, 사악함과 숭고, 자기학대와 쾌감이 상호 어지럽게 공존하고 공모한다. 예를 들면, 싱글채널 비디오 퍼포먼스작 <작가가 되기 위한 신체적 조건- 둘째, 모든 상황을 즐겨라!>(2000)는 실재와 퍼포먼스 사이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그 스스로 대상화되어 제도화된 야만과 폭력(작가 자신의 얼굴에 날아오는 더러운 침과 계란 세례, 그리고 머리에 가해지는 물리적 가격)에 노출되는 듯 보이는 반면, 실재로 자기학대로부터 이 모든 상황을 즐기고직시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또 다른 비디오작 <약물을 통한 신체오감의 이상변화> (2002)에서는 작가 스스로 엑스터시를 복용하고 실험대상화하는 퍼포먼스를 벌인다. 그는 사회가 의도한대로 마약을 복용했을 때 나타나는 구토와 환각과 감각마비의 비정상성이라 부르는 것들과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의 명확한 경계가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형상화한다. 그의 사진 작업 <앉아있는 어린 소녀> (2009)에서, 관객은 소녀의 음부를 향해 뛰어오르려는 어항 속 장어떼로부터 곧 있을 상상을 초월할만한 폭력과 고문과 같은 상황에 공포스럽지만, 어항에 앉은 소녀의 전라의 뒷모습에서 또한 흥분의 오르가즘을 함께 갈구한다. 관객은 이 극단의 배반된 감정에 혼란스럽다.
신체의 물리적 고문과 가학적 쾌락의 공존은 두 장의 연속사진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다>(2009)에서도 동일하다. 피에타의 구도 속 남성의 엉덩이에 가하는 매질에 몰입된 사디스트를 연상케하는 한 여성,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매질 방망이(패들)에는 중세 고문의 처절한 야만의 현장이 부조되어 있다. <아름다운 도구들 시리즈 1>에 등장하는 크리스탈 채찍’, ‘머리카락 채찍’, ‘패들’, 그리고 구리구두는 낯선 고문 도구 오브제들이지만, 그 용도의 상상만으로도 묘한 쾌감을 동반하기에 충분하다.
<인두질된 풍경>(2012)은 중국 운남에서 도살된 소들의 가죽을 벗겨 늘어놓고 파는 정육점과 마주했던 작가의 그로테스크한 기억으로 인해 이뤄진 작업이다. 장지아는 소 한 마리의 가죽에 가학의 형태이자 고단한 인두질 작업을 통해 살 익는 냄새를 참아가며 그 위에 오래된 도시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려냈다. 살을 태우며 가학적 방식으로 일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해내면서 작가는 가학과 아름다움의 공모와 공존을 드러낸다. <아름다운 도구들 시리즈 2>(2012) 또한 19세기말 중국에서 쓰였던 사람 살리는 외과용 수술도구를 그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고문 기능의 텍스트로 치환한다. 장지아는 생명의 도구를 고통과 죽음의 도구로 쉽게 치환할 때 구축되는 새로운 의미와 그 의미의 다층성을 우리에게 또한번 확인해준다. “현실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규범과 그것이 억압하는 개인의 상상력고갈로 말미암아 관객 주체는 매번 상징 질서의 단일성에 굳게 닫혀 있다가 작가가 보여주는 다의적 상황에 계속해 흔들리는 것이다. 장지아는 이렇듯 배제되고 내쳐진 감정과 욕망의 미시정치학을 불러와 관객들의 가라앉은 무의식을 뒤흔든다.
 
추방된 주체들의 저항을 위하여
 
줄곧 미술계는 장지아의 여성--예술의 애브젝션과 욕망의 미시정치학에 대한 천착과 관심보다는 그에게서 도발 혹은 페미니즘적 여전사라는 파격 이미지와 재미에 매달렸다. 주로 성적 금기와 외설 등 다루는 주제 영역에서 나오는 부수 효과일 것이다. 상업 영상과 달리 거친 비디오 작업도 이런 그의 이미지 구축에 한몫했다. 그는 아직도 비디오의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표현과 관객의 감정을 쉽게 컨트롤할 수 있는 속성에서 큰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그가 행하는 매체의 거칠고 직접적인 표현미학과 함께 하는 주제 영역들의 도발과 파격성에도 불구하고 내가 바라본 장지아는 누구보다 정적이고 감성적이다.
돌봄이 없이 철저히 배제된 애브젝트의 구축을 통해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주조된 알리바이들을 끊임없이 교란하려는 장지아의 작업들에서 난 투구를 눌러쓴 강한 검투사의 모습보다는 상징계와의 싸움에 자신의 몸을 던지는 마르터(martyr)의 우울한 모습을 본다. 희망컨대 그의 향후 작업이 좀 더 추방된 다중 주체들의 욕망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면 좀 더 그 우울한 모습을 떨쳐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만히 있으라는 상징 질서의 주술에 주눅들고 사회적으로 배제되어 내쳐진 오늘날 경계 밖 소수 주체들의 애브젝션(추방) 과정의 폭력을 살피려하고 연대하려는 작업 감성같은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