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관리자 | February 17, 2014 | view 1,668
2011 l 장지아 l 작업노트 
작업노트

나의 여섯 번째 개인전 I confess는 고문의 역사속의 장면들을 속죄의 방식으로 연결시킨 작업들이다.
전시장에 전시되는 모든 고문도구와 사진, 설치작업들은 역사속의 고문의 현장이지만 그 모든 고문이 스스로를 향해 있는 형벌이다.
개인으로서의 죄의 고백과 사회적 관계안에서의 죄의 자백은 개인적 금기와 사회적 터부 사이를 넘나들고 있다.
타인에 의한 강제적인 고통은 폭력이나. 나의작업에 드러나는 자발적 고통의 이면은 쾌락의 영역안에 있을 가능성에 대해 열어두고자 한다. 자학이라는 가학적 공격성이 자신에게 행해졌을 때 그 고통이 욕구로 전환될 가능성 말이다.
현대인의 죄의식은 신경증으로 유발된다. 라캉은 광적 욕망에 사로잡혀있는 주체가 욕망에 대한 과잉집착에서 신경증이 시작된다고 한다. 스트레스와 욕망의 억압이 있는 우리는 누구나 병적 증후가 있는 고통 유발자들이다.
이번 기획에 최초의 관심은 카프카의유형지에서에서 등장하는 장교의 기계에 대한 찬미 때문이었다. 재판관이면서 동시에 처형관인 장교는 죄수의 처형과정을 통해서 기계의 우수하고 완벽한 성능을 과시한다. 처형기계는 12시간에 걸쳐 죄수의 몸에 그가 위반한 죄목을 바늘로 기록하고 몸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도록 고안된 장치이다.
한낱 낡아빠진 기계를 맹신해가며 온몸이 갈려 나가도록 자신이 만든 제도를 지켜내는 방법은 그의 파시즘적인 태도보다도 너무나 복합적인 욕망에 대한 갈망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고문의 방법은 그 문화와 역사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진다. 고문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공포와 고통을 전달할 방법에서 심미성을 추구하는 것들이 항상 함께 있어왔으며 문화가 발달한 시대에 극에 달하게 된다. 합리적이거나 실용적인 목적만이 아닌 물질적, 정신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가장 추하고 폭력적인 것들을 우리는 미화시키고 그것에 아름다움을 논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단순히 고통을 고통으로 폭력을 폭력으로만 느끼기에는 복잡한 경로로 감성들을 확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서 원초적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대상이지만 어느 면에선 욕망의 주체가 되어  마치 제의적 퍼포먼스의 희생양처럼 고통 속에서 오히려 충만한 새로운 에너지가 샘솟게 되는 흥분된 정점을 동시에 갖게 된다.
역사 이래 고통의 형태, 고통의 원인은 달랐어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언제나 고통은 존재해 왔다. 마치 우리가 실존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표처럼...
I confess의 작품들은 역사 속 현장을 재현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렇게 보기에는 모든 작업들이 사실과는 조금씩 비틀어져있다.
어떤 작업은 치욕스런 상황 속에 있는 그녀를 성적주체로 다루고 있고 어떤 작업은 그들의 행위의 목적이 고통에서 쾌락으로 넘어가고 있는 듯 보인다. 어떤 것은 필요이상 너무 시각적으로 너무 아름답거나 또 어떤 것은 너무나 복잡한 경로를 거쳐야만 죽을 수 있다.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것, 아름답지만 고통의 경계위에 있는 것, 고통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것...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거나 죽여야 하는 최종의 목적 외에 필요이상의 과잉기능을 갖추고 있는 이것들은 심미적 역할뿐 아니라 고통의 대상들과 지켜보는 우리에게 미학적 전의를 일으킨다.
고통을 통해 우리의 실존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현실과 작가의 환상을 넘나들며 광기어린 삶의 이면을 드러내고자 한다.
작업 전체를 묶는 싱글채널 비디오 작업 하나와 네 개의 사진작업, 6개의 소품, 2개의 설치작업으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