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관리자 | February 17, 2014 | view 1,051
2009 l Jason Waite l Agonistic Aesthetic: Chang Jia 
Agonistic aesthetic: Chang Jia
Jason Waite

Intractable, intransigent, uncompromising, unyielding only begin to describe the geography of the work that Chang Jia has produced over the past decade. Hers is a practice of standpoints; taking a position, defending a position, articulating a position. Finding a circumstance and committing with the body, while employing language, historical research and a certain amount of playfulness. The diverse production of Chang is constantly encountering the taboo. Those images and topics which we prefer to keep private and parts of ourselves which prefer to remain out of sight, Urinating, fetish pleasure, and penis size are a few of the myriad of areas that are out of bounds for society and yet constantly in play for Chang.
While standing firm in her positions, Chang installations, videos, photographs performances and sculptures are able to navigate this uneasy terrain with an appeal that overcomes confrontation and in its place fosters congress. The works transcend the sphere of scandal and embrace an intimacy that is honest. A candor which clears the air of preconceived notions and prejudice, to provide a space where one can ponder what which usually remains out of sight.. 
What becomes apparent in Chang’s aesthetic sensibility is her ability to reconcile these outlying topics with that which is visible and readily apparent. It is this agonism, which does not insist on a divide between what we keep hidden and that which is public but rather as Chantal Mouffe would argue, “the ‘them’ is not the constitutive opposite of a concrete ‘us’, but the symbol of what makes any ‘us’” possible. That which lies at the edge of society can be representative of society itself, while not losing its autonomy or sacrificing its imminence. By bringing forth and putting in plain sight that which is confidential she is able to give a voice to those moments of intimacy, and help constitute meaning in otherwise seemingly senseless acts.  This bridging momentarily in “conflicted consensus,” can be seen as her unique agonistic aesthetic. 
Speaking on beauty Umberto Eco notes, while “beauty is a series of measurements and strict proportions, ugliness is infinite and free.” Chang addresses these irreconcilably positions as a process of fluid inversions in her recent series Beautiful Instruments. Focusing on fetish objects which liberate one’s desires through masochism or the accompanying sadistic execution of torture, she adorns the objects themselves. For example a cat o’ nine tails is refashioned, the knotted ropes replaced with jeweled necklaces, elsewhere a utilitarian paddle is embellished with intricate fine wood carvings. The result is a material seduction, however, one that creates a conflict between use and form. The horror of the perceived brutality of the object’s function is asked to be reconciled with the alluring appeal of its ornamentation. These contrasting sentiments of process and presentation are also embedded in the metal high-heeled shoe an example of the harsh regiment of beauty, which conforms and contorts the figure to appeal to the mass fetishization of the market of appearance.
Rather than strategies Chang expresses a certain attitude, one that can be found in the defiant films of Alejandro Jodorowsky and the mesmerizing stories of Kafka: a staunch individualism that is defined by commitment and an honesty, no matter how brutal at times. Her pragmatic work propels us with such force, we might not know what to expect next, however we will always be able to tell where Chang Jia is standing.
  
Agonistic aesthetic: Chang Jia
Jason Waite
 
아주 다루기 힘들고, 타협하기 힘든, 고집이 센 이라는 말로 장지아가 지난 몇 년간 제작해온 작업의 지형도를 묘사해야 할 것이다. 그녀의 작품은 관점들의 실천이다- 포지션을 택하고, 그것을 방어하며, 그리고 분명히 하는 것이다. 작가는 맥락을 찾고 몸의 언어로 표현하는데 있어서 역사에 관한 조사와 일종의 비틀기를 실행한다. 장지아의 다양한 작품제작은 금기사항과 끊임없이 대면한다. 남들의 시야 밖에 있기를 원하는 몸의 일부분이거나 나만 혼자 앍고픈 이미지나 주제들 예컨대 <서서 오줌 누기>, 페티쉬한 쾌락, 남근의 크기 등은 사회에서 제한하는 경계선 바깥에 존재하는 영역의 몇 가지이지만 장지아의 작업세계에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자신의 확고부동한 자리를 잡은 채로 장지아는 자신의 설치, 비디오, 사진, 행위예술, 조각작업이 불편하지만 직면하게 하는 매력을 가진 그리고 모여들게 하는 이 터부의 영역을 돌아다니게 한다. 그래서 작업들은 스캔들의 영역을 넘어서서 솔직한 은밀함으로 승화하는 것이다. 순수성은 솔직 담백함은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베일을 벗겨내고 시야의 바깥에 존재하던 무엇인가를 깊게 숙고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장지아의 미학적 감성에서 분명한 것은 이러한 소외된 주제들과 가시적이고 이미 명백한 것들과 조화시키는 그녀의 능력이다. 이는 우리가 숨기고자 하는 것과 공적인 것의 분리를 고집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샹탈 무페가 말하는 “‘그들’은 구체적 ‘우리’라는 의미와 반대의 구성요소가 아니라 우리 중 어느 하나일 수도 있음의 상징이다.”라는 논의와 같은 고통이라 할 수있다. 사회의 경계선에 놓여있는 것이 실상은 자율성 잃거나 또는 그것의 절박함에 희생되지 않더라도 사회 그 자체를 표현할 수 있다. 그녀의 숨겨진 지점들을 밖으로 가지고 나와 눈 앞에 제시함으로써 은밀한 순간들에 목소리를 갖게하는 행위는 무감각한 행위가 되었을 행위가 의미를 구성하도록 도와준다. "갈등을 겪는 의견 일치"를 순간적으로 이어주는 지점이야말로 그녀만의 독특한 논쟁적 고통의 미학으로 보인다.
미에 관해 움베르트 에코는 “아름다움은 측정의 연속이고, 엄격한 비율이며, 추함은 끝이 없고 자유롭다“ 했다. 그러나 장지아는 최근작 Beautiful Instruments 시리즈에서 유동적 전도들의 과정으로써 이러한 상충적인 위치들을 다룬다. 인간의 욕망을 자유롭게 하는 자기학대나 사디스트적 고문의 실행을 수반하는 페티쉬 한 오브젝트들에 중점을 맞추면서 그녀는 그 오브젝트들 그 자체를 장식한다. 그 예로,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고양이< a cat o nine tails >는 개조되었고, 매듭으로 장식된 밧줄은 보석이 박힌 목걸이로 대체되었다, 실용적인 몽둥이는 정교하고 복잡하게 다듬어진 나무 조각 들로 장식되었다. 그 결과는 물질적인 유혹이다. 그러나 관람자에게 쓰임과 형태 간의 충돌을 만들어 낸다. 관객은 전시된 오브제의 기능이 가진 잔혹함이 불러일으키는 공포와 그것의 장식이 불러 일으키는 매력과 화해하도록 요구된다. 고문 과정에서 대조되는 디스플레이에서 오는 감정들은 그녀의 작업 안에 잘 녹아 들어있다. 한 예로 또한 쇠로 된 하이힐은 외모지상주의의 시장을 숭배하는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순응하고 자신의 몸을 일그러뜨리는 아름다움을 위한 냉혹한 규율이다.
전략을 꾸미기보다 장지아는 일종의 태도를 표현하고자 한다. 이는 알렉산더 조도로프스키의 도전적 영상물 안에서 발견되고, 최면을 걸듯 마음을 사로 잡는 카프카의 이야기들에서도 발견되는 정직과 집념에 의해 정의되는 확고한 개인주의이다. 그것이 아무리 어려움을 가져다 줄지 모르더라도. 그녀의 실용적인 작품 시리즈는 우리를 뒤흔든다. 우리는 그 다음 작품이 무엇일지 알 수 없으나 장지아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