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관리자 | February 17, 2014 | view 4,146
2002 l pkm 갤러리 l 불온한 경계展 l 전시서문 
불온한 경계 전 (6/26--7/16, pkm 갤러리)

구동희, 장지아, 케이트 허스 등 비슷한 또래의 젊은 여성 작가들이 싱글 채널 비디오라는 매체를 통해서 사회가 둘러친 여러 가지 경계들을 실험한다. 케이트 허스는 [21세기
의 얼굴을 찾기 위한 성교육]에서 임신한 듯 배가 부른 교복 입은 여학생을 등장시킨다. 그 여학생은 구경꾼들 한 가운데서 부른 배를 부여잡고 미친년처럼 웃고 있다. 급기야 실
제 경찰들이 출동하고 해프닝은 저지된다. 여학생으로 분장한 작가의 해프닝은, 미국에 입양한 한국인으로서의 혼란스런 정체성을 투사한다. 그녀는 임신한 여고생 해프닝을 통
해 공공의/ 사적인 공간, 법이 허용하는/ 불허하는 어머니, 어린 숙녀가 갖추어야 할 에티켓/ 무자비한 자기 노출, 예술이 펼쳐져야할 적절한 공간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장지아
는 [약물을 통한 신체 오감의 변화]에서 병실에서의 경험을 담았다. 약물을 투여 받고 실험대상이 된 작가는, 흰 가운을 입은 두 명의 의사와 카메라맨의 분석 대상이 되고 있는
중이다. 건조하고 탈색된 공간 속에서 그녀는 '약물을 통한 신체 오감의 변화'를 5분 단위로 체크 당한다. 임상의학적 시선에 의해 여과된 실험 대상으로서의 한 인간의 행태
는, 병실 함께 갇혀 있는 토끼들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 정신이 몽글몽글한 상태에 잠깐 비치는 나른한 음향은, 그녀의 관리자들이 내는 거슬리는 소리들과 대조를 이룬다. 장
지아는 근대에 확립된 임상의학적 시선을 재현함으로서, 광기의 경계가 규정되는 공간을나타냈다. 구동희는 [12시에 날 불러줘요]에서 꽤나 격식을 갖춘 듯한 한 식사 모임에
서, 모임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소통의 왜곡을 담았다. 식탁에 둘러앉은 인물들끼리 말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제멋대로 내용이 변조되는 과정이다. 구동희는 수신과 발신
의 어긋남을 통해, 사회 속의 개인들에게 가정되는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것은 지시대상과 기호, 기표와 기의의 경계가 고정되지 않고 계속 미끌어지는 상
황, 즉 언어적 경계를 문제삼는 것이다. 이들 세 여성 작가는 여러 차원의 경계를 의심하고 위반하는 불온한 실험을 행한다. 그녀들이 사회가 규정하는 경계, 즉 금기를 위반하
는 것은 동시에 이성의 경계를 묻는 것, 즉 광기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미셀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광기가 세계에 있는 쉽고 즐겁고 경박스러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말한
다. 그는 [임상의학의 탄생]에서도 미치광이의 뇌세포는 가볍고 건조하며 부서지기 쉬운데, 이는 광기라는 질병 자체가 생생하고 활기에 넘치며 폭발적인 성격을 갖기 때문이라
고 지적한다. 특히 장지아와 케이트 허스의 작품에 나타나는 것은, 광기가 갖는 열정이 영혼과 육체가 만나는 장소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며, 구동희에게 광기는 인간과 진
리와의 관계가 방해받고 암흑 속에 묻힐 때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참과 거짓의 분리 불가능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푸코에 의하면 광인들의 지혜가 예견하는 것은 금
지된 지식들이다. 사회가 규정하는 금기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불온한 작가들이 불러들인 광기는 그것이 여성들의 광기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들의 광기, 즉 히스
테리는 자궁을 뜻하는 희랍어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히스테리는 자궁이 '이리저리 헤메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정신분석 학자들은 히스테리증에 걸린 여자의 특징은 여성성의
사라짐 이라고 지적한다. 히스테리증의 극단은 자기 자신의 육체를 외면하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육체는 최악의 광기를 행하는 허가증을 얻게 되는 셈이다. 물론 '불온한 경
계'(전시부제)의 작가들이 불러들인 광기가 펼쳐지는 공간은 정신병원, 레스토랑, 길거리 같은 사회적 장소라는 점에서, 작품속의 인물이 가지는 광기는 생물학적이기 보다는
문화적인 원인을 가진다. 요컨대 그들은 사회가 규정한 행동과 아주 동떨어진 행동을 하고 있다. P. 체슬러는 [여성과 광기]에서 광기는 평가절하 된 여성적 역할에서 벗어난 행
동을 하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정형화된 성 역할을 거부했을 때 붙여지는 딱지라고 지적한다. 라캉 역시 히스테리를 성적 동일시의 동요로 파악한다. 라캉은 문화적으로 강요된
양성의 경계 구분이 주체의 근본적인 불안을 가져온다고 말한다. 히스테리를 부리는 여성은 언어와 존재의 결핍과 간극으로부터 말하는 주체이다. 히스테리 환자는 상징적 동일시
의 이상을 만족시키는 능력의 부재를 폭로함으로서, 현재의 불만을 말한다. 특히 작가들은 히스테리 환자들이 제기하는 질문이 지배자의 대답을 압도하는 순간을 포착하고자 한
다. 히스테리 환자가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진보적 상징인지, 그저 사회의 희생물인지는 알 수 없다.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에게 미친 여자는 언어와 문화의 가장자리에 작용하는
여성 모델들이다. 엘렌 식수는 여성이 조직화될 수 없는 하나의 구조물로서, 문화의 주변에서 작용하는 신성한 영혼이라고 지적한다. 메기 험에 의하면 미친 여자는 여성 작가의
거울 이미지, 즉 작가의 반항적 느낌을 생생히 투사하는 인물이며, 따라서 허구의 형태로 가부장제를 전복시킬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금기를 위반하는 광기는 사회
에 의해 철저히 관리된다. 장지아가 보여주는 병원의 모습은 사회와 자연을 교란하는 광기나 질병이 관리되는 임상의학적 시선을 보여준다. 푸코는 [임상의학의 탄생]에서, 자
신의 방법론과 과학적 규범을 정의 내리려는 임상의학적 사고의 모든 노력 위로 순수한 시선이 순수한 언어가 될 것이라는 신화가 펼쳐졌다고 지적한다. 말하는 시선이라는 신화
는, 구성 요인들을 분리해내면서 구성법칙을 밝히고 공통된 요인을 다른 것과 비교하여 그 유사함과 차별성을 드러냄으로서, 하나의 분류체계를 성립시킨다. 여기에서 시선은 연
속적인 독해 과정을 규정하는 하나의 질서가 된다. 푸코에 의하면 광기나 질병은 자연 그대로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라는 것이 있으며, 의학적 사고에서 광기나 질병은 처음부
터 사회적인 공간과는 어울릴 수 없는 존재였다. 애당초 인간의 육체 위에 자리잡고 있던 광기나 질병이 의사들에게 자신의 특성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것도 바로 공간화가 긋
고 지나간 경계선 상이며, 공간화가 명령하고 배열했던 서열 속이다. 이 전시에 나타나는 경찰들이나 의사들은 광기를 관리하려는 근대의 사회적 요청이 만들어낸 권력 의지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